얼마전, 평론가들과 칸 영화제에서 화제인, 그리고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도 화제인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을 보고왔다.

전작 [황해]나 [추격자] 등의 영화와는 매우 큰 차이점을 느꼈는데.. 앞서 말한 영화들이

정해진 무언가를 쫓아가는 형식의 스릴러, 빠른 전개와 사실적 묘사로 진행해 나가는 영화였다면,

[곡성은] 그보다는 약간 느린 속도로 전개되는 이야기, 비유와 은유가 많이 들어가 있고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다소 간접적인 표현방식을 많이 따른 영화라는 점. 물론 리뷰자체가 개인적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의견이 있을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감독이 어떤 이야기를 했던간에, 결국 생각하게 되는건

 

- 사람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믿음]과 [의심]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약점이란 무엇일까

 

라는 점이었다. 마지막 일본인은 이런 말을 한다.

"네가 말했지 않느냐. 내가 악마라고. 그렇다면 너는 네가 가진 의심을 확정짓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일 뿐,

나에게 대답을 듣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의미의 말을...)

 

 이어 이런 말을 부정하는 목사는 "네가 악마가 아니라면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가겠다"

라는 반박을 하고, 이는 곧 자신의 믿음에 금이 갔으며, 의심으로 이어졌다는 말을 의미한다.

황정민과 일본인은 애초에 악마(또는 그것을 섬기는 사람)라는 이야기, 무명(천우희)은 마을을 지키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 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러한 설정을 떠나, 영화가 막 끝나간 시점에 (그리고 스포일러를 읽지 않고

영화를 보러 간 사람들에게는) 우리는 어떤 사람이 악마였는지, 혹은 선한 사람이었는지 빠른 판단을 하기에는

영화의 플롯이 두겹 세겹으로 꼬아져 있다.

 하지만 중요한건 어떤 사람이 나쁜 무엇이고, 착한 무엇이고는 영화 자체가 나에게 던지는 물음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받았다는 것. 시작과 끝은 우리의 믿음과 의심 그 자체이다.

 

 내가 무엇을 '악마'라고 받아들인다면, 그건 그냥 악마 그 자체인 것이다. 누군가가 '그건 악마가 아니야!' 라고 말한다고

'아 저건 악마가 아니었구나. 그럼 뭐지?' 라는 의심을 하게 된 순간, 자신의 믿음에는 금이 가고 새로운 의심을 낳게 되는

것이다. 그 의심은 악마에 대한 의심으로도, 혹은 '악마가 아니야!' 라고 말한 누군가를 향한 의심으로도 번질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자의식과 이성적 판단을 가진 (소위 말하는) 이성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존재는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실은 얼마나 나약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그 나약함이 어떤 추한 행동을 불러일으키는지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영화가 나에게 준(=내가 느낀) 메세지와는 별개로, 카메라의 목적은 굉장히 잘 넣은 듯 했다.

사진 발명 초창기에는 실제로, 카메라(사진)가 사람의 영혼을 훔쳐간다며 사진을 찍지 않는 일이 빈번했으니 말이다.(악마의 도구라고도

불렸을 정도?). 필자도 사진으로 무엇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여튼, 잘 만든 하나의 장치이지 않았나 싶다.

 

 

 한번 더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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